홈 > 홍천용씨소개 > 가문을 빛낸 인물
1. 용이식(龍利植)회장 -致雨公派 28世孫, 종친회 초대회장
흩어져 있는 문중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위하여 각골하는 노력을 하셨으며, 용씨 가문의 우수성을 확립하고, 용문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물신양면으로 헌신한 분이다. 협력과 단합을 강조 하셨으며, 시조 유허비를 건립하고 덕산루를 주공했으며 서로 애종(愛宗)하는 정신을 강조하셨음. 종친회를 20년간 봉사하셨으며 용씨문중을 튼튼히 만드셨고. 43년간 우리 씨족의 대동보를 개편하지 못하고 있을 때 병진 대동보를 발간 하셨음.
2. 용태영(龍太映)회장 -致雨公派 28世孫, 종친회 2대회장
대한민국의 법조계에 명성이 높으신 분으로, 석가탄신일을 국가 공휴일로만드셨으며, 대한 변호사 협회 회장직을 수행하셨으며, 종친회의 초석이 되기위하여 노력하셨습니다. 국가를 위하여 대일민족소송단의 단장으로 일본법정에서 변론을 하셨으며, 국위선양에도 큰 공헌을 하셨습니다.
3. 용한성(龍漢星) 상임부회장 -
1976년부터 28년동안 긴세월을 홍천용씨 종친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으며, 1990년7월1일 부터 상임부회장 직무를 감당해 오면서, 어느누구 못지 않은 열의와 정성으로 종친회를 시작부터 이끌어 왔었고, 용한성 부회장이 없었으면 오늘의 종친회는 없으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꾸준히 문중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고귀한 분입니다. 종친회가 오늘에 있기까지 이 한분의 희생 또한 보석보다 값진 소중한 분입니다.
4. 용남진(龍南眞) 부회장
대한민국의 변호사로서 용태영 변호사와 같이 대일민족소송단의 일원으로 용태영변호사와 같이 일본법정에서 변론하셨음.
5. 용을식 회장 -致雨公派 28世孫, 종친회 3대회장
남달리 일직부터 문중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많았으며, 2000년 4월에 종친회 3대회장직을 맡으셨다. 용이식회장, 용태영회장과 같은 치우공파 28대손으로 사업적 능력이 뛰어났으며, 국가적인 인물로서 세상에 많이 알려진 분이다. 조상에 대한 충효사상이 뛰어났으며, 문중을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종친회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하는 의식을 강조하였으며, 갑신 대동보 편찬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셨다. 선친께서도 을해보를 만들기 위하여 함경도, 전라도 등 여러곳을 다니시며 수고를 하셔서 집안이 대동보와 인연이 깊으신 분이다.
6. 용영일 장군-之雨公派
육군사관학교 16기 졸업, 사단장 ,국방정보부장, 육군중장 예편, 재향군인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충과 효를 중요시 하는 대한민국의 장군으로 나라에 큰공을 세우시고, 가문의 영광스러운 문무를 갖춘 장군이다.
7.용환각 - 독립운동가 (춘천고등보통학교(현 춘천고등학교)17회)
공은 1917년 11월10일 홍천에서 출생하여 명문 춘천고보에 유학하면서 항일 독립 정신이 투철하여 춘천고보의 비밀결사 상록회(常錄會)를 조직하여 항일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독서회를 부설, 「하루빈 역두의 총성」「상록수」「흙」등의 민족주의 문헌을 탐독시킴으로서 민족의식에 눈뜨게 하고, 독립사상을 지니도록 계몽에 임했으며 상록회 강령인 조선민족해방운동을 확산코져 춘천농고, 함흥고보, 평양고보 및 서울 제일고보와 제휴하여 레지스탕스로서의 공동전략을 펴는 한편 만주지방의 독립지사(거성 이동산 선생) 들과 연결하여 상록회 운동을 펴 나가던 중 1938년 9월2일 일제에 피건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6개월 체형 복역하였다.
1979년 12월3일 서거하였으며 1990년 12월26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